
안녕하세요! 김호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중국 연변에서 왔고 30살되는 딸아이 하나 있어요. 첫번째 결혼은 5년만에 실패하고 아이를 데리고 중국 북경에서 7년 살다가 언니의 도움으로 2005년11월에 미국에 왔어요. 지금 딱 19년됐네요. 그리고 10년전 2015년에 지금 현재 미국남편을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구 있구요.
저는 울렁증이 많아 가지고 원래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무서워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오늘 큰 용기를 냈습니다. 그냥 마가교회에서 그림자같은 사람이라 저를 좀 소개해야 될것 같아서 나왔어요
종교생활은 미국에 와서 시작했어요.
중국에도 가정 교회들이 있는데 저도 두번은 그냥 궁금해서 놀러간 적 있어요.
한번은 한 20대때 연변에서 그리고 다른한번은 북경에서 가본 적이 있어요.
종교생활은 미국에 와서 시작했어요.
중국에도 가정 교회들이 있는데 저도 두번은 그냥 궁금해서 놀러간 적 있어요.
한번은 한 20대때 연변에서 그리고 다른한번은 북경에서 가본 적이 있어요.
교회에 다니게 된 계기는 미국에 도착한지 이틀지나서 언니가 저를 데리구 한의원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채전도사님 처음 봤죠. 그때 채전도사님이 그 한의원에서 지압을 배우는 사람들한테 모델로 몸을 빌려 주셨는데 저도 당연히 전도사님 몸에다가 많이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미국에 온 첫번째 일요일날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서 전도사님 설교를 들었습니다. 저한테는 이날이 하나님을 만난 첫 날 이였어요.
찬송가를 처음 듣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막 흐르더라구요. 하나밖에 없는 딸 애를 중국에 남겨놓고 온 죄책감과 그리움에 눈물이 더 많이 났었던것 겉아요.
찬송가를 처음 듣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막 흐르더라구요. 하나밖에 없는 딸 애를 중국에 남겨놓고 온 죄책감과 그리움에 눈물이 더 많이 났었던것 겉아요.
그리고 설교를 듣는데 전도사님의 하시는 설교가 저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 같았어요. 그 때의 저의 슬픈 마음에 정말로 위안을 주셨고, 전도사님과 함께 하는 기도가 저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어요. 교회는 처음이라 믿음이 뭔지는 몰랐지만 교회에서 울고 오면 마음이 좋아지는 그런 기분이였어요. 그후부터 저는 이렇게 일요일을 기다리게 되였고 교회를 나가기 시작 했어요.
채전도사님의 설교 말씀은 항상 재밌고 또 위로를 많이 얻었지만 때로는 호되게 때려 맞는 기분도 났고 때로는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었어요.... 어쨌든 매번의 말씀이 항상 어떻게 이렇게 내 상황을 잘 아시는가 싶은게 가슴에 와 닿았어요. 저는 이렇게 천천히 하나님을 만나게 되였어요.
미국에 온지 두달이 거의 지나서 저는 여기에 정착해야 되니까 중국에서 오는 사람들은이 하는 망명 신청을 하게 되었는데 변호사님이 저를 보고 교회에 다니냐고 묻기에 다닌다고 했더니 저보고 종교망명신청을 제기 하더라구요. 그렇게 저는 종교망명 신청을 하게 됐어요. 그것을 계기로 저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함전도사님의 진심어린 보살핌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2024년 5월에는 함전도사님의 증인으로 인해 19년만에 영주권도 받았어요.
2024년 5월에는 함전도사님의 증인으로 인해 19년만에 영주권도 받았어요.
한번의 기적도 대난하겠지만 하나님은 저의 한테 많은 기적들을 주셨어요.
한국은 무비자라 미국에 오는게 쉽겠지만 중국에서 미국에 오기란 너무나 힘들어요. 특히 어린 아이들은 더힘들죠.
한국은 무비자라 미국에 오는게 쉽겠지만 중국에서 미국에 오기란 너무나 힘들어요. 특히 어린 아이들은 더힘들죠.
그런데 저는 미국에 온 지 2년 뒤에 우리 딸 아이를 조기 유학으로 데려왔어요. 중국에서 학생비자를 맡으려면 재산 증명도 있어야 되고 아무튼 증명해야 될것이 너무 많아서 수속이 너무 힘들어서 못한다고 봐야 되는데 아무것도 없는 제가 14살밖에 안되는 애를 미국에 데려 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지요. 근데 수속을 시작해서 10일만에 데려왔어요. 이거는 하나님의 기적이 없이는 절때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동안 많은사람들의 기도와 염려와 사랑이 하나님을 감동시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본 사람이예요.
그리고 이 은혜를 항상 자랑하고 다녀요. ㅎㅎ
신분도 없는 저에게 미국에서 집 살수 있는 기회를 줬고 한창 부족한 나에게 천사같은 남편도 보내줘서 결혼도 하고. 한번은 채전도사님이 오셔서 우리 남편이랑 대화를 나누셨는데 전도사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 남편도 하나님을 믿는구나 하셨어요. 저는 나중에 그 말씀의 참 뜻을 전도사님의 설교에서 알게 되였어요. 하니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이 나한테 오셔야만 하나님을 믿을수 있는것이고 내가 하나님한테 갈 수 없다는 것을. 전도사님은 우리 남편하고 대화에서 사랑을 보셨구나...
그리고 이 은혜를 항상 자랑하고 다녀요. ㅎㅎ
신분도 없는 저에게 미국에서 집 살수 있는 기회를 줬고 한창 부족한 나에게 천사같은 남편도 보내줘서 결혼도 하고. 한번은 채전도사님이 오셔서 우리 남편이랑 대화를 나누셨는데 전도사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 남편도 하나님을 믿는구나 하셨어요. 저는 나중에 그 말씀의 참 뜻을 전도사님의 설교에서 알게 되였어요. 하니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이 나한테 오셔야만 하나님을 믿을수 있는것이고 내가 하나님한테 갈 수 없다는 것을. 전도사님은 우리 남편하고 대화에서 사랑을 보셨구나...
하나님은 항상 실현을 먼저주고 나중에 더 큰 은혜를 주시는것 같아요.
몇년 전에 남편이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었어요. 저는 남편이랑 우리가 만난지 얼마 안됐고 아직 신혼인데... 하나님한테 남편을 만나 이제야 행복해 졌는데 벌써 데려가면 안된다고 매일 매시간 매 초마다 하나님한테 빌고 또 빌었어요. 심지어 하나님께 무심하다고 욕도 해봤어요. 그 치료하는 기간은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저의 무지한 요구를 들어 주셨어요. 그런 지옥같은 힘든 시간을 다 보내고 지금은 남편의 암세포가 다 사라지고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놀라운 진정한 기적이었어요.
딸애가 미국에 온 지 시간이 좀 지나서 저는 아이의 학교 문제로 이사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거리상의 문제로 마기교회를 떠났었어요. 몇 년을 다른 교회에 다녔었는데 도저히 마가 교회와는 설교가 너무 달라서 적응을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전 아예 교회를 안나가고 유투브로 마가교회의 채전도사님 설교를 찾아서 듣곤 했었어요...
팬대믹 기간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 스파가 1년동안 휴식했어요. 그리고 1년뒤에 다시 영업을 시작했는데 손님도 없고 너무 조용한 어느 하루 문득 손님 세 명이 가게에 들어 오시는데 저는 처음에 어안이 벙벙했어요. 익숙한 얼굴이 호연아하고 부르시는데 저는 정말로 뜻 밖이라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저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했는데 10년이란 세월을 넘어서 채전도사님의 뜻밖의 방문이었어요. 얼마나 반갑던지 정말로 퐁퐁 뛰었어요. 그 뒤로 저는 떠난지 10년만에 다시 마가 교회를 돌아 왔어요.
오씨마가교회가 개척되기 전까지 거리가 멀어도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엘에이에 가곤 했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여기 오렌지 마가교회에서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기 오렌지 마가교회에서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채전도사님 설교는 이제 들을수 없지만 이찬영 목사님의 계속되는 참 메세지를 들을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우리 마가 가족이 영원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오늘 이렇게 오씨 마가교회 가족여러분들 앞에서 저의 감사 메세지를 공유할수 있게 돼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주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오늘 이렇게 오씨 마가교회 가족여러분들 앞에서 저의 감사 메세지를 공유할수 있게 돼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주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멘!!